안녕하세요 빌리스토리입니다. 람보르기니의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람보르기니의 창업주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 1916 - 1993), 창업주의 이름을 따서 브랜드 이름이 람보르기니입니다. 람보르기니라는 단어 자체가 뭔가 멋있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이건 오랫동안 들은 람보르기니라는 이름과 동시에 멋있는 슈퍼카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루치오와 엔초 페라리의 첫 만남
페루치오는 엔초 페라리(자동차 브랜드 엔초 페라리 창업주)를 직접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좋은 자리로 만나는 것이 아닌 자신이 페라리 250 GT를 몰면서 너무 시끄럽고 문제점이 많고 마음에 들지않아 직접 분해하는 과정에서 클러치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페루치오는 엔초 페라리를 만나서 지적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페라리 본사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마침내 엔초 패라리를 만나게 됩니다. 엔초는 당시에 모터스포츠 경기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자만심과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기네 엔초는 페루치오를 봤을 때 웬 작은 마을의 시골 사업가가 자기 차의 결함을 지적하러 온것이 마음이 들지 않아서 그의 앞에서 비아냥거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패루치오에게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You know how to drive tractors. But you'll never learn how to drive a real Ferrari.”보아하니 자네는 트랙터는 잘 모는 모양인 것 같은데, 진정한 페라리를 몰아보면 평생 걸려도 제대로 몰지도 못할 걸세
페루치오는 자신이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동경하는 자동차 제조사 페라리 회장에게 운전도 못하는 촌놈 취급을 받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페루치오는 화가 났고 자기가 직접 제대로 된 스포츠카를 보여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람보르기니의 창업 비화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일설에서는 페루치오가 페라리 250 GT를 분해하면서 고성능 스포츠카라는 명성과 가격에 비해서 그 구조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트랙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하여 이 정도면 자신이 직접 만들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스포츠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엔초 페라리에게 무시를 당했던 이야기는 사업 수익이 좋았던 페루치오가 당시에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 페라리와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 내면 더 큰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어낸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엔초는 자만심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었고 페라리 측에서도 엔초가 페루치오를 무시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세게 부정하지도 않았고 엔초가 상당히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유명해서 사실상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후에 이탈리아 자동차 업계에서 재능이 뛰어난 엔지니어들을 설득하여 함께 일하게 되었고 그들고 함께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스포츠카 공장을 만들었고 1963년 2인승 V12라는 쿠페 형태의 첫 람보르기니 모델인 350 GTV 차량을 생산하게 됩니다. 1966년에는 람보르기니가 세계 최초의 슈퍼카라 고 할 수 있는 모델 미우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게 됩니다. 슈퍼카라는 단어를 쓰게된 것은 바로 이 미우라가 나오게 되면서 슈퍼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델 미우라는 리어 미드십 엔진을 가지고 있는 최초의 자동차입니다. 페루치오는 그냥 빠르기만 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차에는 그닥 관심이 없었지만 미우라를 발표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욕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페루치오는 미우라만큼 좋은 또는 더 뛰어나고 실용적인 멋있는 신차를 계획하기로 했습니다. 그 슈퍼차가 바로 197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보여줬던 람보르기니 쿤타치 모델이다. 하지만 항상 승승장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1970년대에는 트랙터 사업의 성장이 더디고 석유파동으로 인해 람보르기니는 조금 휘청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일을 겪게 되면서 페루치오는 경영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람보르기니 회사를 스위스 사업가인 조르주 앙리 로세티에게 매각을 하고, 이후에 람보르기니는 결국 1978년에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에는 프랑스인 장 클로드 미므란과 파트릭 미므란이라는 형제에게, 1984년에는 미국의 크라이슬러 사에게 매각되기도 하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크라이슬러에서 1990년 쿤타치의 후속작 디아블로 모델을 선보였고 이후 계속 크라이슬러 밑에서 지내다가 1994년 또 다시 크라이슬러에서 인도네시아의 메가테크라는 회사에 매각되었습니다. 결국 1998년 아우디에게 인수가 되면서 현재까지 아우디의 자회사로 남게 되었습니다. 람보르기니의 경영권이 넘어간 이후에 페루치오는 포도 농사를 지으면서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포도주를 만들면서 노후를 보내다가 1993년 방송 녹화 도중에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게 되면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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