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 슈퍼카의 대명사 람보르기니 자동차 브랜드!
람보르기니의 시작
자동차 브랜드 람보르기니는 1963년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Ferruccio Lamborghini)라는 사람이 설립한 이탈리아의 스포츠카 생산 기업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페라리라는 유명한 자동차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스포츠카와 슈퍼카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 회사에는 철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페라리보다 빠른 차를 만들자” 입니다. 이런 철칙이 있는만큼 두 회사 간의 경쟁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람보르기니의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이미 페라리에 크게 데인 적이 있기 때문에 튼튼하고 편안한 GT카(이탈리아어로 Gran Turismo, 그란 투리스모는 장거리 운전을 목적으로 설계된 고성능 자동차를 말함)를 좋아했다는 것과,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인 파올로 스탄차니(Paolo Stanzani)라는 엔지니어도 '양산형 자동차는 절대로 레이싱카를 흉내 내어선 안된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차량을 설계하고 개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창업 초기의 이야기다. 람보르기니 자동차 미우라와 쿤타치라는 모델로 나름 큰 수익을 얻은 람보르기니는 퓨어 스포츠카에 욕심을 내면서 퓨어 스포츠카 라인업을 점점 확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는 모델 우루스를 제외하면 아벤타도르, 우라칸처럼 주력 모델은 분명 퓨어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드십 구조로 되어 있고 트렁크는 작고 좁습니다. 또한 차량의 높이도 정말 낮은 편입니다. F1같은 레이싱 분야가 아닌 일반 도로에서 주행하는 차량에서는 람보르기니는 확실히 퓨어 스포츠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람보르기니만의 디자인,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직선 위주로 디자인 되어있는 날카로운 모습은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남자들에게 정말 많은 인기와 인지도가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훌륭한 디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람보르기니 쿤타치 모델에서 시작된 이 디자인은 람보르기니가 아우디에 매각되면서 많이 희석되었다가 모델 레벤톤이 나오기 시작해 2011년에 출시한 아벤타도르에서 람보르기니의 인기와 인지도의 정점을 찍게 되면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에 비해 판매 대수가 적지만 현재는 거의 비슷한 수준입니다. 시작을 페라리보다 늦게 했기 때문에 모델 수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페라리의 생산 모델은 12대이지만 람보르기니는 모델 아벤타도르, 우라칸, 그리고 우르스 까지 총 3가지 모델이 있습니다. 람보르기니는 페라리와는 다르게 모델 풀체인지 주기가 깁니다. 람보르기니는 퍼포먼스 향상에 있어서 뒤지지 않는 이유는 페라리는 거의 하지 않는 페이스리프트와 성능 향상을 한 번 씩 거치기 때문입니다. 2020년 한해 동안 판매량은 2019년 약 8,200대보다 조금 작은 약 7,400대를 판매했다고 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기가 조금 불황인데도 불구하고 판매향은 많이 떨어지지 않은 걸로 보아 람보르기니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람보르기니의 첫 SUV 슈퍼카의 우르스 판매량은 약 4400대로 좋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고, 아벤타도르에 비해 그나마 조금 저렴한 우라칸이 약 2,200대 그리고 플래그쉽 슈퍼카인 아벤타도르가 약 850대를 팔았다고 합니다. 최초로 슈퍼카라는 칭호로 불리게된 자동차 브랜드는 람보르기니다. 람보르기니 모델 미우라가 슈퍼카로 불리기 시작되면서 람보르기니는 슈퍼카의 상징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루치오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짧게 이야기해보자면 그는 1916년 이탈리아 어느 한 포도농장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동네에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페루치오는 어렸을 때부터 농업을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 농기구와 농기계들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페루치오의 부모는 페루치오가 기계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배우게 하기 위해서 볼로냐에 있는 어느 한 기계학교로 보냈다고 합니다. 2차 대전으로 전쟁 중이었던 1940년에 이탈리아 공군기지에서 차량 정비병으로 복무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영국군 포로로 잡혀가 1년 정도 지내게 되고 1946년에 귀국하게 되면서 자동차 정비소를 차렸습니다. 1947년에 페루치오는 트랙서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돈을 크게 벌게 되었습니다. 또한 2차 대전 이후에 농업의 자동화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게 되면서 트랙터의 수요가 폭등했습니다. 그리고 경작용 트랙터를 생산하는 일을 1950년 후반까지 했습니다. 원래 어렸을 적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페루치오는 트랙터 사업을 통해서 벌은 돈으로 고급차 여러 대를 구입하여 몰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 중의 하나는 페라리의 250 GT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생각하기에 차 자체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시끄럽고 거친 느낌이 들어 트랙이 아닌 일반 도로 또는 비포장도로에서는 운전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클러치가 계속 오작동을 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페루치오는 이러한 원인을 알아보고 싶어서 직접 페라리 250GT를 분해하였고 이 분해를 통해서 알게된 것은 람보르기니에서 생산하는 트랙터와 페라리에서 사용하는 클러치가 동일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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